관점 · 2026년 6월 25일 · 13분

AI시대 인간다움 재정의취향과 디지털 DNA

Sujin Keen

Sujin Keen

(66)DAYS 파운더 · 서울대 인지과학 석사과정

AI시대 인간다움 재정의 — 취향과 디지털 DNA
66pov4.1 — AI다움 속에서 인간다움을 찾아서
66pov4.2 — 실리콘밸리, 취향 좋으면 뽑는다고?
66pov4.3 — 좋은 취향은 기록으로 쌓인다
66pov4.4 — 66일 기록하면 뇌 회로가 변화한다
66pov4.5 — 커뮤니티와 기록하면 나의 뇌를 확장한다
66pov4.6 — 인간다운 기록은 무엇일까? 우리가 함께 기록할 것들
66pov4.7 — 이 카드를 여기까지 넘겼다면?
66pov4.8 — 기록은 취향을 쌓는 새로운 인간다운 행위다

목차

디지털 — AI다움 속에서 인간다움을 외치다

AI가 시를 쓰고 코드를 짜기 시작하자, 다들 실존적 위기감 때문에 황급히 '인간다움'을 찾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 거창한 철학적 질문을 떠나 'AI다움'에 대한 사소한 짜증이 먼저 났다. 내가 몸담은 테크씬은 어느 순간부터 오직 '효율'만 좇고 있었다. 무엇을 만들었느냐보다 몇 시간 만에 만들었느냐가 박수의 기준이 됐고, AI가 토해낸 못생긴 결과물 앞에서도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혼자서 해서 좋다(a.k.a. 다 해고할 수 있어서 좋다), 빨라서 대단하다(그러니 못생긴 걸 미친 듯이 더 만들 거다). 그 풍경이 나는 자꾸 괴로웠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온다면 혀를 찼을 거라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그래서 슬그머니 테크 밋업을 끊었다. 쏟아지는 결과물을 지켜보는 일이 버거워서. 대신 'AI 시대의 인간다움' 같은 단어를 들고 브랜드와 웰니스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그리고 거기서 숨통이 트였다. 속도에 쫓기지 않는 시간, 나를 들여다보는 감각. 분명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다만 나는 거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쉬는 것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했다. 천성이 만드는 사람이라, 손을 놓고 있으면 좀이 쑤셨다. 느려도 좋으니 여전히 '내 것'이라 부를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어느 쪽에도 온전히 끼지 못한 채, 그 사이 어딘가 — '중간 층' 에 서 있었다. 빨리 찍어내기만 하는 쪽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다 내려놓고 쉬기만 하는 자리에 눌러앉지도 못하는. 속도에 휘둘리긴 싫지만, 멈춰 있고 싶지도 않은 사람.

이 글은, 혹시 그 어정쩡한 자리에서 비슷한 갈증을 느껴본 적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신호다.

아날로그 — 덮어놓고 과거로 돌아가, 그건 괜찮나?

우리는 '인간다움'을 무슨 영원불변의 본질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간다움은 한 번도 고정된 적이 없다. 그것은 매번 —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하나씩 가져갈 때마다 — 그 바깥에서 새로 정의돼왔다.

문자가 그랬다. 소크라테스는 글쓰기를 미심쩍어했다. 『파이드로스』에서 그는, 문자가 사람들의 기억을 망치고 '아는 척'만 늘릴 거라고 경계한다. 그가 살던 세계에서 지성의 척도는 '암기'였으니까. 입에서 입으로 서사시를 통째로 외우는 능력이 곧 교양이었다. 그런데 문자가 그 암기를 외주화해버렸다. 한때 인간다움의 핵심이던 능력이, 도구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인간다움은 죽지 않았다. 다만 '외우는 힘'에서 '읽고 해석하고 쓰는 힘'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인쇄술도 그랬다. 활자가 나오기 전, 필경사의 손글씨는 그 자체로 숙련이자 가치였다. 인쇄기는 그 손기술을 하룻밤 사이에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계산기는 암산을, 카메라는 '사실적으로 그리는 손'을 가져갔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이 '똑같이 그리는 일'을 대신해주자 회화는 오히려 해방됐다. 더 이상 사물을 재현할 필요가 없어진 화가들은 인상으로, 추상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해석'으로 옮겨갔다. 기계가 능력을 가져갔는데, 결과적으로 인간은 더 인간다운 쪽으로 — '새로운 인간다움'을 정의한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분명하다. 인간다움은 과거를 지키는 데 있지 않다. 보일러가 들어왔는데 굳이 아궁이에 장작을 땔 이유는 없다. 인간다움이란 새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자리를 옮겨온, 지극히 역사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다. 고정되지 않는 것, 환경에 적응하는 것 — 나는 그것만이 인간다움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거다. AI가 이번에 가져간 능력은 무엇이고, 인간다움은 이번엔 어디로 옮겨가는가.

AI가 나보다 일을 잘한다면? 나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AI가 통째로 가져간 건 '실행력'이다. 코드를 짜고,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보고서를 정리하는 그 '손'의 영역. 이제 누구나,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게 됐다. 만드는 일이 공짜에 가까워지면, 희소해지는 건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고르는 능력이다. 나는 그것을 취향이라고 부른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취향 좋으면 뽑는다"는 말이 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 슬롭(slop)'이 넘쳐나는 시대에 옥석을 가리는 감각, 즉 취향 자체가 '공적 자산'이 됐다. (Taste Labs 같은 스타트업이 'AI를 위한 취향 레이어'를 짓겠다며 투자를 받는 풍경을 보라.) Taste Lab이 AI에게 취향을 이식하는 동안, 나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고 싶다. 개인의 취향은 디지털 DNA로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취향은 선언으로 생기지 않는다. "나는 이런 취향이야"라고 AI한테 이식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취향을 기르겠다고 돈을 쓰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나는 거꾸로 했다. 돈을 받는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돈을 받는 순간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조사해야 하고, 직접 봐야 하고, 보고하고, 산출물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패션과 F&B 현장을 다니며 셀 수 없이 많은 보고서를 썼고 — 어느 순간 그 기록들이 나를 '취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더라.

그러니까 취향은 내가 남긴 기록 위에서 자란다. 매일의 기록이 쌓이면 패턴이 보이고, 그 패턴에서 나의 원칙과 취향이 사후적으로 '발견'된다. 마치 흩어진 데이터에서 분포를 추정하듯, 취향은 내 기록의 누적에서 추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이 곧 나만의 '디지털 DNA' 다. 신체에 새겨진 DNA를 넘어선, 새로운 종류의 인간다운 DNA.

사실 이건 나만의 주장이 아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엄청나게 기록한 사람'이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우 매튜 맥커너히가 그렇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받은 이 세계적인 배우는, 사실 열다섯 살부터 3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해온 사람이다. 그 방대한 기록을 묶어 회고록 《그린라이트》를 냈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가 말하는 기록법은 허무할 만큼 단순하다. "No Wrong, Just Write."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잘 쓰려 하지 말고, 그냥 엄청나게 기록하는 것. 그 단순한 반복이 한 사람의 세계를 만든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티스트 제니 역시 꾸준히 자신을 기록해온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그녀가 남긴 메모와 일기들은, 결국 무엇을 만들고 어떤 사람이 될지를 스스로 그려가는 과정이었다. 기록은 그렇게,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나'를 빚는다.

블랙핑크 제니가 월드투어 중에도 빼먹지 않는 아침 습관 — 일기장 인터뷰

같은 챗GPT를 쓰면서, 무엇이 나를 구분 짓게 할까?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잠시 우주로 나아갈 것이다. (N적 과대 상상력) 머지않아 '1인 1에이전트'의 시대가 온다는 전망이 있다.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는, 선진국에선 1인 1에이전트 시대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개인 에이전트를 갖지 못하면 AI의 잠재력을 거의 쓰지 못하게 될 거라면서. 이제 인간의 역할은 직접 일하는 '작업자'에서, AI에게 목표를 주고 검증하는 '사장 — 디렉터'로 옮겨간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질문이 남는다. 모두가 같은 거대 언어 모델 위에서 각자의 에이전트를 굴린다면, 그 똑같은 거대 언어 모델 위에서 무엇이 '내' 에이전트를 나답게 만드는가? 답은 하나뿐이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기록. 나의 원칙, 나의 취향, 나의 분별. 게임 캐릭터를 잘 키우려면 잘 설계해야 하듯, 내 에이전트를 나답게 키우려면 그 설계도 — 곧 기록 — 이 있어야 한다. human-in-the-loop 이라는 말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AI에게 대체당하는 게 아니라, 기록을 통해서 AI와 함께 나아가는 흐름 안에 남는다. 그 안에서 끝까지 '나'로 남게 해주는 건, 기록이다.

(여기까지 오면 나는 좀 더 먼 상상까지 하게 된다. 언젠가 내 기록이 나를 닮은 에이전트가 되어, 내가 사라진 뒤에도 누군가의 현재와 연결되어 대화하는 세계. 인류의 도서관을 한 권씩 늘려가는 일. 그건 아직 미실현된 선언적 미래라서, 오늘의 글에선 살짝 접어두겠다. 다만, 나는 그런 시대가 올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왜 우리는 66일 기록해야 할까? — 미엘린 수초에 대한 진지한 광기

다시 우주에서 땅으로 돌아와 보자. 미래에 나의 의식을 인터넷 망에 업로드한다는 우주적 상상 말고, 66일 기록하면 당장 뭐가 좋을까?

런던대 연구에 따르면 새 습관이 자리 잡는 데 평균 66일이 걸린다. 왜 하필 반복이 사람을 바꾸는가. 이 대목이 나오면 인지과학 전공자 모먼트가 나온다. 그래서 다소 진지해짐 주의. 어쩌면 이게, 내가 이 일에 진심인 이유이기도 하니까.

좋은 머리란 결국 뉴런의 연결 속도가 빠른 것을 의미한다. 그 속도를 결정하는 게 미엘린(미엘린 수초), 뉴런의 축삭을 감싸는 지방질 절연체다. 전기 신호는 이 피복 사이의 틈(랑비에 결절)을 콩콩 건너뛰며 이동하는데, 이것을 도약전도라 부른다. 미엘린이 두꺼울수록 신호는 최대 100배까지 빨라진다. 그러니까 반복은, 뇌 안에 진짜로 '광케이블'을 까는 일이다.

그리고 이 미엘린 수초는 '실수를 인지하고 교정하는 바로 그 순간'에 가장 활발해진다. 기록은 정확히 그 지점을 때린다. 과정을 로그로 남기면 뇌가 '이 회로는 중요하다'고 인식해 미엘린 수초화를 가속하고, 막히거나 틀린 부분을 남겨두면 회로를 다시 점화하게 되며, 빈도와 집중도를 눈으로 보이게 하면 동기가 붙어 신경가소성이 촉진된다. 결론. 66일의 기록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매일 축삭에 미엘린을 한 겹씩 더 감는 물리적 배선 공사다. …네, 압니다. 너무 진지했죠. (EBS 지식다큐 끝..)

66일 기록하면 뇌 회로가 변화한다

왜 우리는 서로의 기록을 공유해야 할까? — 연결된 커뮤니티 두뇌를 만들자

보통 인터넷 강의의 완강율은 5%이다 — 솔직히 강의가 나쁜 것이 아니다, 혼자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혼자서 66일을 못 버틴다.

"내 주변 5명이 곧 나의 평균"이라는 말처럼, AI가 다 해주는 시대에 끝내 대체할 수 없는 건 내가 어떤 네트워크에 나를 위치시키는가다.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디에 서 있느냐. 요즘 세상은 회사의 'AX(인공지능 전환)'를 화두로 삼는다. 그런데 조직이 아니라 '나'의 자리에서 보면,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커뮤니티에 속할 것이고, 그 안에서 어떤 정보를 주고받을 것인가. AX가 조직의 전환이라면, 이건 개인의 전환이다. 그리고 솔직히, 후자가 훨씬 더 나를 바꾼다.

나는 이게 더 큰 흐름의 일부라고 본다. AI가 한 사람을 한 팀으로 만드는 지금, '회사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누구나 1인 파운더로 설 수 있게 됐다. 다만 혼자 서는 것과 외롭게 버려지는 것은 다르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자리를 메우는 건, 같은 길을 걷는 솔로 파운더들의 '연대' 다. 조직의 시대가 가고, 연대의 시대가 온다. 커뮤니티는 그 연대가 자라는 땅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비스 앱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빌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다운 기록은 무엇일까? — 우리가 함께 기록할 것들

흥미롭게도, 이 정원들은 인간의 몸 위에, 혹은 인지의 층위 위에 가지런히 얹힌다. 인지정보처리 모델로 보면 — AI는 외부 입력을 무한히 쏟아내는 쪽이고, 인간다움은 그 입력을 '디지털 DNA'로 바꾸는 처리력이다. 각 정원은 그 처리의 한 단계를 단련한다.

  • 💗 사랑 정원 (관계) — AI가 끝내 흉내 못 내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케미다. 소개팅을 100번 주선해온 큐레이터가 설계한 6일. 스펙으로 거르는 대신, 기록으로 서로의 결을 먼저 알아간다.
  • 🎨 창조 정원 (무의식) — 무엇이든 '생성'되는 시대일수록 내 안에서 길어 올린 고유함이 귀해진다. 줄리아 카메론의 모닝페이지로 매일 한 장, 잠든 창조성을 깨우는 66일.
  • 🧘 무아 정원 (신체) — 노트북을 닫아도 머릿속 창은 꺼지지 않는다. 이 정원은 에고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 다만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본다. 에고를 제거가 아니라 '초월'하도록.
  • ✍️ 문장 정원 (언어) — '써줘'가 익숙해진 시대라 오히려, 직접 문장을 짓고 자기 문체를 갖는 일이 중요해진다. 자기 문체를 가진 사람만이 AI를 더 높은 차원으로 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 정원은 거꾸로, 66일 동안 'AI 없이' 쓴다.
  • 🧭 얼리워크 정원 (뇌) — AI가 작업을 가져간 시대에 끝내 남는 건, 직접 내 고객을 만드는 힘이다. 작업자에서 디렉터로. 한 사람이 작은 회사를 굴리는 법을 직접 해본다.

그리고 이 목록은 계속 늘어난다. 최근엔 너무나도 재밌는 철학 크리에이터와 새로운 작당모의도 시도하고 있고, 럭셔리 브랜드에서 맛과 멋을 아는 멤버분께는 찐 취향 레이어를 같이 쌓아보자고 청탁해둔 상태다. 재용이 캐나다 간 김에, 낭만 정원을 아예 캐나다로 옮겨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나누는 중이고.

기록의 박물관? 도대체 그게 뭐야?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 내가 보여주는 이건 내가 상상한 전부가 아니다. 머릿속엔 기록이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이, 시간과 공간을 건너 대화하는 도서관이 있다. 하지만 끝판왕을 기다리다간 아무것도 내놓지 못한다는 걸 안다. 'this is never that' — this는 현실, that은 이상. 이 의류 브랜드 이름처럼, 나는 상상하던 걸 다 보여주지 못한 채 조금씩 쪼개어 배포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아직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이 다음이 있으니 더 지켜봐 달라고. 그래도 일단, 오늘의 최선을 낸다. 66일, 하루 한 줄. 작아 보여도 이건 그 거대한 도서관의 허접한 순간들이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늘 이런 마음 아닐까 싶다. 이게 전부는 아니니까, 다음의 나도 지켜봐 달라는 마음. 상상 부채는 갚는 게 아니라 계속 쌓이는 것이고, 그게 나를 다음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이 과정, 허름한 순간의 과정 자체도 기록해서 미래에게 신호를 보낸다. 누군가 이 순간의 나와 대화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입체적으로 기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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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FAQ)

AI 시대에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요?

인간다움은 과거를 지키는 게 아니라, 기술이 바뀔 때마다 새로 정의돼온 가변적인 것입니다. AI가 '실행력'을 가져간 지금, 인간다움은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취향과 판단'으로 옮겨갑니다.

취향은 어떻게 기를 수 있나요?

취향은 선언이 아니라 기록에서 옵니다. 매일의 기록이 쌓이면 패턴이 보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원칙과 취향이 사후적으로 발견됩니다.

'디지털 DNA'란 무엇인가요?

매일 남긴 기록의 총합입니다. 같은 거대 언어 모델 위에서 내 AI 에이전트를 '나답게' 만드는 학습 데이터이자, 신체의 DNA를 넘어선 새로운 인간다움입니다.

왜 하필 66일인가요?

런던대(UCL) 연구에 따르면 새 습관이 자리 잡는 데 평균 66일이 걸립니다. 반복하면 뇌의 미엘린 수초가 두꺼워져 사고 회로가 빨라집니다.

왜 혼자가 아니라 커뮤니티인가요?

인터넷 강의 완강율은 보통 5%에 불과합니다. 혼자서는 66일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커뮤니티가 그 회로를 깔리게 하고, 솔로 파운더들의 연대가 됩니다.

66DAYS는 어떤 서비스인가요?

서비스 앱이 아니라 커뮤니티입니다. 영역별 큐레이터가 '정원'을 열어 함께 66일을 기록합니다 — 사랑(관계)·창조(무의식)·무아(신체)·문장(언어)·얼리워크(지휘). 참여는 인스타그램 DM으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인용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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